20210711
온도, 21도.
PAGEN(@juststayus)
오늘 과제. 문학. 끄적끄적 6글자를 공책에 적어둔다. 따사로운 햇볕이 미야 아츠무의 뺨을 자꾸만 건들었다. 감은 눈을 움찔거리며 끙, 하고 앓는 소리를 내던 아츠무가 몸을 일으키자 레이는 왼팔을 살짝 옆으로 뺐다. 아슬아슬하게 닿지 않은 팔을 물끄러미 내려보다가, 시선을 올려 아츠무를 바라본다.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기지개를 켜고선, 숨을 느리게 쉰다. 야……. 아직 수업 시간이니까 글로 해. 레이는 그의 말을 가벼이 글로 받아친다. 옆자리가 된 지 12일째, 오늘은 7월 12일. 유리처럼 반짝이는 하늘과, 하얀 블라우스나 와이셔츠가 땀이 나 자꾸만 살에 들러붙는 날. 미야 아츠무와 카즈마 레이는 오늘도 공책 한 개를 두고 대화 중이었다.
각각 11번과 12번이라 적힌 종이를 뽑아 든 둘은 눈이 마주치자마자 엑, 하는 소리를 냈다. 원체 사이가 안 좋아야지. 한 달 동안이나 붙어 있을 생각을 하면 절로 성가셨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은 미야 아츠무가 배구부 체육 특기생이었기에, 대부분의 수업 시간엔 자고 있거나 연습을 나가는 것이었다. 아츠무의 옆자리를 뽑은 걸 안 A 양이 다가와 혹시 자리를 바꿔줄 수 있냐고 물었지만, 레이는 거기까지 귀찮게 굴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이미 가방을 옮겨 뒷자리의 책걸상에 걸어두고 태평하게 엎드린 아츠무에게 그가 다가갔다.
“미야?”
“사무 새끼 생각나니까 아츠무라고 하래이.”
“……그래, 아츠무. 어쨌든 한 달간 짝이니까 잘 지내자?”
아츠무는 오른손을 휙휙 내젓는 거로 인사를 대신 했다. 저게? 레이는 속으로 여러 말을 중얼대며 옆 책상의 의자를 뒤로 빼 앉았다. 카즈마 레이가 본 미야 아츠무는, ‘여러므로 불성실하고 재수 없는 배구부 놈’이라는 느낌이었다. 또래보다 큰 키에, 노랗게 물들인 머리카락. 맥 빠진 눈동자는 그의 쌍둥이인 오사무와 싸울 때나 배구를 할 때만 빛났다. 이따금 그가 뒷문을 가로막고 있어 그를 올려다보며 비키라고 할 때, 그는 특유의 감흥 없는 눈으로 상체를 비켜뜨리곤 했다. 사이가 어떻냐고 묻는다면 단연코 좋다고 말할 수는 없는 정도. 아츠무와 레이의 관계는 딱 그 정도였다. 옆자리가 된 이후, 선생님이 유인물을 주라며 옆자리인 레이에게 맡긴 이전까지는.
레이는 마른 손으로 머리를 간지럽히며 유인물을 빤히 바라보기만 했다. 이거 무조건 내야 하는 건데, 그냥 놔두면 걔 성격상 잃어버리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검은색 플라스틱 샤프를 들고, 공책의 귀퉁이 하나를 찢었다. 사각사각 소리와 함께 글자가 적힌다. 꼭 내. 단 두 글자. 다 낡은 나무 책상 위엔 작은 배려가 놓였다. 연습을 끝내고 뒤늦게 교실 문을 연 아츠무는 그것을 보고서부터 그와 글자를 나누었다.
야, 이다음 급식 뭐지.
……넌 맨날 먹을 생각만 해?
그건 사무지!
그럼 딴 얘기 좀 해봐.
그 문장에 아츠무는 잠시 열기에 들썩거리던 등을 멈춘다. 그러고 보면 레이와 나눈 이야기는 급식이 뭐냐든가, 과제가 뭐냐든지. 그런 이야기들밖에 없었다. 아츠무는 제 샤프의 심 부분으로 책상을 톡톡 건드리며 눈을 내리깐다. 그리고서 레이가 쓰느라 그쪽으로 기울어진 공책을 다시 끌고 와 심을 눌러 쓴다. 내 첫인상 어땠어. 레이는 그가 이럴 때마다 속으로 움찔댔다. 그는 늘 이리저리 통통 튀는 사투리를 쓰곤 해 그의 말을 유심히 듣지 않아 종종 뜻이 헷갈리던 적도 있었다. 당연하게도 그 또한 글자로 써 내리는 말들은 다른 이들과 같이 정갈한 일본어였다.
레이는 그가 도쿄의 사람들처럼 표준어로 말하는 상상을 해본다. 어색해. 이상한 상상에 레이는 풉, 하고 웃는다. 갑작스러운 웃음에 아츠무는 자신이 질문했다는 것도 까먹은 채 수업 시간 내내 그가 웃는 이유를 캐물었지만 결국 레이는 답해주지 않았다. 그리고 중간에 둘이서 나란히 밖으로 쫓겨나기까지 했다. 레이는 보면 볼수록 그가 참 허당 같다고 생각했다. 의외로 말이다.
그와 짝이 된 지 한 달이 지나고서도 선생님은 알아서들 하라며 자리를 바꾸는 걸 미뤘다. 빨리 시간이 지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레이는 이제 생각이 바뀌었다. 좀 더 느리게 가도 괜찮을 것 같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레이가 고개를 기울였다. 그러자 엎드려 있던 아츠무와 시선이 맞닿았다. 딸랑, 하고 뭔가 종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의 고동색 눈동자 속 안광이 부닥쳤다. 레이는 황급히 시선을 돌렸다. 뭐지, 왜 저렇게 쳐다보지. 그렇게 고개를 돌리고 레이가 혼란스러워할 때, 아츠무는 생각했다. 나름 예쁘게 생겼나.
레이는 조금 시간이 지나고서야 고개를 들었다. 슬슬 무더위가 조금씩 올라오고 있었다. 아지랑이가 실내에서도 보일 정도로 덥고 열기가 찬 하루가 계속되어가는 날. 어느새 하교 시간이 다 되어 가고 있었다. 레이는 아직도 모르고 있다. 그날, 아츠무가 계속해서 레이만을 쳐다보고 있었다는 걸. 얼마 지나지 않아 미야 아츠무는 제 감정을 인정했다.
8월의 가운데에 날짜가 서자, 불어오는 바람 또한 선선하지 않기 시작했다. 맨 뒷자리에 놓은 둘은 교실 중앙에 틀어지는 에어컨 바람은 더더욱 닿지 않아, 온전히 열기를 맞을 뿐이었다. 레이는 목덜미를 타고 흐르는 땀을 애써 무시했다. 아츠무는 어느 새부턴가 수업 시간에도 자지 않게 되어, 늘 그와 말을 하거나 장난을 치고 있었다. 언젠가부터 아츠무와 레이 사이엔 미묘한 기류가 흐르기 시작했다. 당사자가 아니면 눈치채지 못 할 정도로. 이를테면, 수도꼭지 틈새로 흐르는 물 한 방울, 페이지를 넘기면서 간지럽혀지는 손등, 아롱거리는 숨결과도 같은 사소하고 작은 것들. 아츠무는 턱을 괸 채 레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레이는 검고 긴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며 눈을 깜빡였다. 더운 공기가 교실을 가득 채우자 이젠 선생님의 말씀도 들리지 않았다. 열정이 가득하게 칠판을 가리키며 영어단어를 설명 중인 것 같다. previse. 아츠무는 기억을 더듬거려 보았다. 무슨 뜻이더라. 아, 그래. 눈치채다.
레이의 머리카락이 목덜미를 가리고 있다가, 그가 허리를 숙이자 자연스레 어깨 쪽으로 흘러내린다. 드러난 목덜미가 발갛게 홧홧하다. 아무래도 어지간히 더운 것 같다. 창가 쪽이 아닌, 에어컨 쪽에 좀 더 가깝게 있는 레이는 아츠무보단 사정이 좋았지만…… 어쩐지 그는 아무래도 좋았다. 쇄골을 타고 가슴팍 안쪽으로 흘러내리는 땀마저도 괜찮았다.
그때, 레이가 등을 아예 굽히고 엎드렸다. 동시에 에어컨 바람은 조금 더 강해지고, 레이가 미묘하게 웃음을 띤다. 아츠무는 말랑하게 올라가는 레이의 얼굴이 좋았다. 누르면 폭 들어갈 듯한 웃음도. 한 번 인정하니 이래저래 마음이 안정될 날이 없었다.
……그래, 다 좋지만 지금 상황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아츠무는 레이가 엎드리는 바람에 레이의 등에 가려진 공책을 빼냈다. 레이가 고개만 살짝 옆으로 돌려 그의 손을 바라보았다. 핏줄이 도드라진 채, 건강한 혈색이 돌고 있다. 심을 새로 끼운 샤프를 잡은 채 글자를 쓰던 아츠무는 잠시 움직임을 멈춘다. 허공에서 샤프를 빙글빙글 돌리다가, 글자를 써내곤 레이 쪽으로 공책을 밀고 흘겨본다. 레이는 머리 위로 닿는 에어컨 바람을 마다하고 싶지 않아, 최대한 몸을 덜 움직여 공책 위를 보았다.
좋나 보다.
? 뭐가.
아츠무는 짧은 말에 잠깐 고민하는 듯했다. 레이가 그 모습을 빤히 쳐다보았다. 어쩐지 오늘따라 아츠무의 귓불이 빨갛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와이셔츠 소매를 걷은 팔목에 약하게 힘을 주고, 기대고 있던 의자에서 몸을 앞으로 빼, 열심히 무언가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큰 덩치의 남자아이가 끄적대고 있는 모습이 꽤 웃긴다면 웃겼고, 귀엽다면 귀여웠다. 살랑대는 꽃잎이 창문 밖에서 바람에 흩날리고 있다. 어느덧 그가 전부 그린 듯 레이에게 공책을 들이밀었다. 아츠무에, 그리고 공책에 시선을 주며 그가 눈동자를 굴렸다가 저절로 아, 소리를 냈다.
줄 공책 위, 레이의 손가락 너비 정도의 크기로 그려진 말풍선 안에는, 너무 엎드리지만 말고, 나만 봐라. 라고 적혀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엔 어찌나 꾹꾹 눌러 그렸는지, 볼펜처럼 진하게 그려진 여우가 꼬리를 살랑대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레이는 애써 손으로 웃음을 가렸다. 아, 귀여워. 뭐지.
그 웃음이 흡족했는지 아츠무는 보기 좋은 미소를 띤다. 역시 카즈마 레이는 웃을 때가 제일 귀여웠다. 아츠무가 그런 생각을 품고 있는지도 모르고, 그림이 귀엽다고 생각했던 레이는 몇 초 뒤 조금 이상함을 느꼈다. 잠시만, 근데 왜 이런 말을 해? …잠시만? 무어라고 말을 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혼란스러운 느낌이 머리를 강타했다. 본능적으로 고개를 팍, 들고 레이는 멍한 얼굴로 아츠무를 바라보았다.
창문 너머로 하얀 구름이 파란 하늘을 잔뜩 녹여대며 몸체를 넓히고 있었고, 교실 내의 온도는 21도를 넘어가고 있었다. 너무 덥지도 않은 미적지근한 날씨. 미야 아츠무는 카즈마 레이의 온도만을 올린다. 뜨거운 열기가 얼굴 위로 피어오른다. 여름이 계속해서 둘을 맞이하고 있었다.
MIYA ATSUMU X KAZUMA RAY
CM 파그엔